자신의 소명을 사랑하면 필시 세상도 사랑하게 된다. 그 밤에 비를 맞으면서 나는 온 영혼을 다해 소리 내어 시를 외웠다. 그리고 나 자신이 '오갈 데 없는 처지' 라거나 '공동체에서 쫓겨난 마귀' 가 아니라 시인이라고 생각하자 얼굴을 때리는 빗방울이, 빗줄기에 춤추는 옥수수 잎이, 촛농이 떨어지는 창턱까지도 축복처럼 여겨졌다. 그런 시적인 순간은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삶이 내게 말하려 했던 것이 그것이었다. 이 깨달음은 그날 이후에도 나를 붙들어 주었다. 언제 어디서나 나 자신이 시인임을 기억할 때, 모든 예기치 않은 상황들을 마음을 열고 받아들일 수 있었다. - 17p 중에서 - 모든 상처에는 목적이 있지 않을까? 어쩌면 우리가 상처를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상처가 우리를 치료하는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