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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쿠오바디스, 아이다 후기 줄거리 결말 해석 실화

freemaden 2021. 6. 13. 18:42

영화 쿠오바디스, 아이다는 야스밀라 즈바닉 감독의 연출작으로 3년 동안 진행되었던 보스니아 내전 중 전쟁이 끝날 무렵에 벌어진 스레브레니차 학살 사건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영화 제목인 쿠오바디스, 아이다에서 쿠오바디스는 성경 구절에 나오는 어디로 가야 합니까라는 뜻이고 아이다는 주인공 이름으로 결국 영화 제목은 어디로 가야 합니까 아이다로 직역할 수 있습니다.

 

 

이는 내전 상황, 게다가 적군 세르비아의 부대를 피해 난민처럼 떠돌아다니는 보스니아 스레브레니차 마을 주민들이 그나마 엘리트 층이자 UN 통역관으로 전시 상황을 잘 알고 있는 동족 아이다에게 자신들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 질문을 던지는 의미로 풀이할 수 있고 또한 신의 구원이 느껴지지 않는 지옥과도 같은 상황에서 아이다 본인이 자신을 포함한 동족들이 대체 어디로 가야 살 수 있는지에 대해 신에게 되묻고 있는 것으로 풀이할 수도 있습니다.

 

 

"영화 쿠오바디스, 아이다 줄거리 소개"

 

보스니아 내전 전쟁이 수년 째 계속되는 와중에 세르비아계 군인들은 승리의 기세를 몰아 UN이 지정한 중립지대 스레브레니차를 점령했고 스레브레니차의 마을 사람들은 세르비아계 군인들을 피해 UN군 기지가 있는 최후의 안전지대로 달아납니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 모두를 수용할 수 없었던 UN 평화군은 난민의 일부분만 들이고 나머지 사람들은 기지 밖에서 대기하게 합니다.

 

 

더구나 기지 안에도 밖에도 난민들이 충분히 사용할 수 있는 화장실과 먹을 수 있는 식량이 전혀 준비되지 않았던 상태였기 때문에 UN 군 장교는 본부에 지원을 요청하지만 UN 본부는 안이한 태도로 장교의 요청을 무시하고 결국 시간이 지날수록 난민들과 UN군은 대책 없이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아갑니다. 이때 세르비아계 군을 이끄는 장군이 UN군 장교에게 협상자리를 요청하고 마을 사람들 대표도 함께하는 자리에서 세르비아 장군은 난민들을 모두 살려주겠다고 약속합니다. UN 소속의 통역관인 아이다는 세르비아 장군의 약속이 거짓임을 알고 어떻게든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남편과 아들 둘을 세르비아 군의 위협으로부터 탈출시키려 하는데...

 

 

" UN의 영향력 아래 안전이 보장될거라 믿었던 아이다"

 

보스니아인이지만 UN 소속 통역관이기도 한 아이다는 당시 전쟁의 상황을 마을 사람들보다 발 빠르게 파악할 수 있었고 아이다는 UN의 지시대로 통역일을 충실히 해나가면서 UN의 비호 아래 숨어 있을 수 있다면 자신과 자신의 가족들이 반드시 살아남을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믿음 아래 아이다는 UN 기지 안에도 들어갈 수 없었던 자신의 남편과 아들들을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기지 안으로 들일 수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영화 내에서 아이다가 할 수 있었던 것은 딱 거기까지였습니다.

 

 

UN 본부의 지원없이 소수의 병력만으로 기지를 지키고 있었던 UN 군 장교는 밀려 들어오는 난민으로 인해 점점 지쳐갔고 어찌할 바를 몰라하고 있을 때 세르비아계 군인들을 이끌고 있는 믈라디치 장군이 난민들을 모두 살려주겠다는 약속과 함께 난민들을 자신들의 버스에 태워 보스니아 정부가 관리하는 지역에 내려주겠다는 협상안을 내놓습니다.

 

 

UN 군장교는 자신들이 난민들을 언제까지고 수용할 수 없다는 한계를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믈라디치 장군의 말을 믿고 세르비아 군을 피해  온 난민들을 다시 적군에게 인계합니다. 이미 다른 속셈이 있었던 믈라디치 장군은 여자와 아이들만 버스에 태워 지정된 장소에 보내버렸고 남자들은 무기를 버리게 한 다음 트럭에 태워 따로 다른 장소로 이동하도록 지시합니다.

 

 

"국제기구 UN의 무능과 무책임함, 그로 인해 학살당하는 사람들"

 

전체적인 상황이 협상한대로 흘러가지 않았지만 UN 장교는 어떻게든 자신들이 책임져야 했던 난민들을 반군에게 넘김으로써 책임을 덜 수 있다는 것에 안도했고 본부에서도 세르비아 군대의 심기를 건드리지 말라는 지시가 떨어졌기 때문에 UN 장교는 난민들을 세르비아 군에게 모두 넘기고 자신들은 철수할 준비를 꾸립니다.

 

 

무책임한 UN의 조치로 인해 난민들은 적군인 세르비아 군에게 넘겨졌고 결국 마지막 보루라고 생각했던 중립지대인 UN기지에 세르비아 군인이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스레브레니차 마을 난민들의 희망은 사라졌습니다. 아이다는 자신의 남편과 아들들이 세르비아 군대가 인솔하는 트럭에 올라타면 결국 총살당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어떻게든 UN 부대가 철수하는 여정에 자신들도 포함시킬 것을 간곡히 부탁해 보지만 세르비아 군의 눈치만을 살피는 상관에게 거절당하고 UN 기지에 남편과 아들들을 숨겨 놓지만 이마저도 발각되면서 결국 아이다의 남편과 아들들은 세르비아 군이 이끄는 트럭에 올라타고 맙니다.

 

 

"8000명의 남성이 집단학살 당하게 된 이유"

 

결국 난민들 중 남성들은 영문도 모른 체 교회나 학교 강당으로 끌려가 무기력하게 총살당하면서 최악의 비극을 낳았습니다. 그 숫자가 무려 8000명에 가깝다고 하며 이 사건은 후에 스레브레니차 학살 사건이라 불리게 됩니다. 모든 희망을 빼앗겨버린 아이다는 내전 이후에 살아남아 교사로서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지만 자신들의 남편과 아들들을 살해하는데 일조한 사람들과 학부모로 마주하게 되는 아이러니한 결말로 영화는 마무리됩니다.

 

스레브레니차 학살을 주도한 라트코 믈라디치

 

영화 쿠오바디스, 아이다에서 뼈저리게 느낄 수 있는 점은 전쟁을 전혀 억제하지 못했던 국제기구 UN의 무기력함과 무책임함입니다. 그리고 보스니아에서 진행되었던 내전과 비극적인 학살이 현재에 이르러 미얀마 사태와 홍콩 사태에 똑같이 재현되고 있다는 점, 이를 자행하고 있는 강대국이나 독재자의 행태를 그 무엇도 막아낼 수 없다는 점, 그로 인해 무고한 시민들이 희생당하는 점들을 통해 결국 비극적인 역사가 지금도 재현되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 과거의 역사적 비극을 기억하고 경계해야 함을 경고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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