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log

[소설 도서리뷰] 바깥은 여름 (김애란)

freemaden 2019. 5. 6. 11:10

"독서 초보인 내가 읽기에는 알맞은 구성"

 

워낙 평이 좋아서 구매만 해놓고 안 읽다가 드디어 완독 했습니다. 7개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읽기가 힘들진 않았습니다. 요즘 이런 단편 모음집 같은 책이 많이 나오는 것 같은 같아요. 어쨌든 장기간 독서가 힘든 저에게는 알맞은 구성입니다. 2개 정도의 단편은 내용이 추상적이라 이해하기 힘들었고 나머지 단편들은 주로 인간의 죽음과 상실, 관계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어요. 특히 죽음의 당사자로서의 시점이 아닌 주변 사람들의 관점에서 가까운 이가 죽음을 당했을 때 인간의 상실감을 잘 나타낸 책입니다.

 

 

 

 

우리는 그 사인용 식탁에 둘러앉아 매일 밥을 먹었다. 그렇게 사소하고 시시한 하루가 쌓여 계절이 되고, 계절이 쌓여 인생이 된다는 걸 배웠다. 욕실 유리컵에 꽂힌 세 개의 칫솔과 빨래 건조대에 널린 각기 다른 크기의 양말, 앙증맞은 유아용 변기 커버를 보며 그렇게 평범한 사물과 풍경이 기적이고 사건임을 알았다.

 

- 21p 중에서 -

 

이 글은 입동이라는 단편에서 가져온 글귀입니다. 입동은 한 부부가 어린 아들을 교통사고로 잃은 뒤의 이야기를 다룬 이야기인데요. 원래 이 부부는 여느 대한민국 부모님이 그렇듯 여유롭지 못한 형편에 어린 아들을 위해 살고자 하는 의지로 열심히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불행한 사고로 자식을 잃은 뒤에는 그 의지마저 꺾여 부부 세계의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보여줍니다. 특히 자식을 잃은 뒤에는 예전에 힘들게 버티면서 가족이 단란했던 그 시기가 행복했던 순간임을 알게 하는 저 글귀가 인상적이었어요. 저 글을 읽으면서 내 이 비루한 일상도 나에게는 꽤 멋진 순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함과 동시에 내 가족과 함께 할 수 있는 순간 또한 무척이나 소중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할머니, 용서가 뭐야?"

"없던 일로 하자는 거야?"

"아님, 잊어달라는 거야?"

찬성이 채근하자 할머니는 강마른 손가락으로 담뱃재를 바닥에 톡톡 털며 무성의하게 대꾸했다.

"그냥 한 번 봐달라는 거야"

 

- 47p 중에서 -

 

위 글은 두 번째 단편 노찬성과 에반에서 할머니가 힘든 하루를 마치면서 '주여, 저를 용서하소서...'라고 하자 손자인 노찬성이 용서에 대해서 물어본 건데요. 저는 할머니의 답변에서 애잔하면서도 매우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한 번 봐달라는 거는 정말 어쩔 수 없을 때 상대방에게 감성적으로 호소하는 표현이지요. 할머니는 노찬성의 아버지가 사고로 죽은 뒤에 손자와 함께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일하면서 힘들게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결국 할머니의 봐달라는 말은 자신도 어찌할 수 없는 시련을 그만 내려달라는 하나님에 대한 호소문 같은 거겠지요. 아니면 세상에 대한 호소문일 수도 있고요. 보통의 용서는 타인에게 죄를 짓고 요청하는 것인데 할머니는 마치 강자에게 괴롭힘을 당하는데 그만 좀 봐달라는 느낌의 용서로 느껴져서 더 안타까웠습니다.

 

 

 

 

어른들은 잘 헤어지지 않아, 서로 포개질 수 없는 간극을 확인하는 게 반드시 이별을 의미하지도 않고, 그건 타협이기 전에 타인을 대하는 예의랄까. 겸손의 한 방식이니까. 그래도 어떤 인간들은 결국 헤어지지. 누가 꼭 잘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각자 최선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일이 일어나기도 해. 서로 고유한 존재 방식과 중력 때문에. 안 만나는 게 아니라 만날 수 없는 거야.

 

- 244p 중에서 -

 

제가 나이가 들어서 대학교를 졸업할 때 즈음에 이해했던 부분이기도 해서 더 공감할 수 있었던 글귀입니다. 만약 저 부분을 인정하지 않고 이해할 수 없었다면 저는 아마 타인과의 관계에서 계속해서 괴로워하고 힘들어했을 것 같습니다. 타인과의 관계가 잘못되고 어그러질 때마다 제 탓을 하거나 남의 탓을 해야 하는데 그건 정말 제 자신을 괴롭히는 일이기 때문이죠. 다음 관계를 위해서 저 사실을 인정하고 넘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살아가면서 느끼는 상실의 아픔에 대해서"

 

이 책을 읽으면서 제 인생의 상실에 대해서 생각해 봤습니다. 저도 어릴 때 노찬성처럼 강아지를 키우다 죽음으로 인해 상실을 느껴본 경험이 있고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가족의 상실도 경험해 봤습니다. 지인의 관계에 의한 상실 또한 수도 없이 겪어봤습니다. 그 많은 상실의 경험들이 저를 더 강하고 의연하게 만들 것 같았지만 저는 나이가 들수록 겁만 더 늘어나는 것 같습니다.

 

가족의 건강에 대해서, 소중한 사람과의 관계에 대해서, 제가 가진 소소한 것들에 대해서, 제가 어쩔 수 없는 것들에 대해서 노찬성의 할머니처럼 저는 세상에 대고 봐 달라는 말 밖에는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어 보입니다. 그래서 아무 일이 없는 이 하루가 더 감사하고 다행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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