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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슬픔의 삼각형 후기 줄거리 결말 해석 자본주의의 붕괴와 조소

freemaden 2023. 6. 6. 14:51

영화 슬픔의 삼각형은 더 스퀘어를 연출한 루벤 외스틀룬드 감독의 작품입니다. 더 스퀘어를 통해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감독은 자본주의에 대한 신랄한 비판과 풍자가 담긴 영화 슬픔의 삼각형 또한 그 작품성을 인정받아 또 한 번의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는 업적을 달성했습니다. 영화는 자본주의의 풍자와 비판을 넘어 권력에 대한 인간의 본성 및 탐욕을 과감하게 그려내기에 감독이 완성한 풍자의 세계에 동의한다면 이 영화는 만족스러운 작품으로 와닿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영화 속 풍자의 장면들이 그저 불편한 작품으로 느껴질 수 있습니다. 

 

 

"영화 슬픔의 삼각형 줄거리 소개"

 

모델 커플 칼과 야야는 식사비를 매번 남자가 내는 것에 대해 대화하다 크게 다투게 되고 야야는 칼에게 사랑보다는 비즈니스적 필요관계를 언급하며 갈등을 풀어나갑니다. sns 인플루언서이기도 한 야야는 협찬을 받아 남자친구 칼과 호화 요트에 탑승하게 되고 두 사람은 즐거운 시간을 보내지만 요트가 해적선을 마주치게 되면서 침몰위기에 봉착하는데...

 

 

"통상적인 성역할을 악용하는 야야"

 

여자 모델이자 sns 인플루언서인 야야는 남자친구 칼보다도 수입이 많지만 항상 식사 후 지불을 칼에게 떠넘깁니다. 이 같은 일이 계속 반복되자 칼은 야야에게 불만을 토로하게 되고 이에 야야는 칼을 한심하다는 듯 대하며 두 사람은 크게 다투게 됩니다. 나중에 야야는 자신의 솔직한 마음을 털어놓고 비즈니스적 관계를 칼에게 강조합니다. 야야는 인플루언서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 칼과 같은 잘생긴 모델 남자친구가 필요했고 또 칼은 야야와 함께 다니며 사진을 찍어주거나 매니저 역할을 도맡아 했기에 그녀에게 편리한 연인이었습니다. 칼은 야야의 말에 납득하면서도 야야가 비즈니스 관계뿐만 아니라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하게 만들겠다고 큰소리칩니다. 이후 두 사람은 협찬으로 호화요트 여행을 떠나게 되면서 여러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무능한 리더와 부도덕한 부자만 남은 자본주의의 실패"

 

영화에서 호화요트는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이 세상의 축소판 그 자체입니다. 요트에는 시설을 담당하는 아시아 출신의 현장 노동자가 있고 그 위에는 백인으로 구성된 선박 직원들이 근무합니다. 그들은 같은 노동자임에도 불구하고 계급이 나뉘어져 하급 노동자들을 천대하는 분위기가 지배했으며 그들 모두 돈에 무조건적으로 따르는 극단적인 자본주의를 이루는 부품들이었기에 돈을 지급하는 손님의 말에 절대적으로 복종합니다. 

 

 

요트의 책임자인 선장은 요트의 항해와 안전에는 아무 관심도 없고 방에 틀어박혀 술만 마셔댑니다. 이후 선장은 술독에 빠져 중간관리자인 폴라의 재촉에도 선장이 주최하는 디너를 미루다 가장 날씨가 좋지 못한 날에 만찬회를 열기로 결정합니다. 폴라가 날씨를 언급하며 여러 번 만류했지만 선장은 폴라의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고 그렇게 잘못된 그의 결정은 계속해서 반복되며 요트가 전복되는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합니다. 영화에서 선장은 각 나라의 대표, 리더를 비유한 것으로 무능하고 무심한 지도자들이 아이러니하게도 나라가 나아가야 할 배의 키를 잡고 있는 모순적인 현 세계의 상황을 빗대고 있습니다.

 

 

요트에 손님으로 등장하는 사람들은 모두 거대한 부를 축척한 사업가들입니다. 하지만 그들 중 대부분은 남의 것을 빼앗아 자신의 이득을 취하는 방식으로 부를 축척했으며 호화요트에 올라탄 것 또한 요트의 목적지가 탈세가 유용한 은행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무기를 만들어 전쟁을 통해 다른 사람의 목숨을 취해 부를 쌓은 무기상이나 공장들의 형편이 좋지 못해 문을 닫게 되자 곧바로 회사를 팔아 거액을 챙긴 회사 대표, 신흥 부자로 떠오른 러시아 사업가 등, 부자로 보이는 그들 모두는 배려보다는 부를 통해 다른 사람을 지배하는 것에 대해 만족하면서 온갖 갑질과 만행을 저지릅니다. 

 

 

"하루아침에 뒤바뀐 세상"

 

무능한 선장으로 인해 요트는 거친 파도를 만나 휘청이다 나중에는 해적선을 마주치면서 해적선의 공격에 침몰합니다. 다행히 살아남은 사람들은 근처 무인도에 도착하게 되는데 무인도에는 스스로 사냥을 통해 식량을 확보해야 했기에 섬에 도착한 사람들 사이에서 돈의 원리는 통하지 않게 됩니다. 그들 중에서 사냥과 생선 손질, 요리를 할 줄 아는 유일한 이는 요트에서 최하급 노동자였던 에비게일이었고 아시아 노동자인 에비게일은 무인도에서 리더로 급부상하게 됩니다. 무인도에서의 에비게일의 인생역전의 모습은 무너진 세상에서 다시 판이 짜인 새로운 세상, 부정과 부패로 인해 무너진 자본주의와 대안으로 떠오른 능력주의, 부계가 아닌 모계 중심의 역전된 세상을 암시합니다.

 

 

하지만 권력에 취한 에비게일은 젊고 매력적인 남성 칼에게 눈독을 들이기 시작합니다. 결국 그녀는 권력을 앞세워 칼에게 복종과 함께 달콤한 보상을 제시했고 이에 칼은 연인 야야를 배신하고 에비게일에게 굴복하고 맙니다. 자본주의의 부당하다고 느껴진 모든 것이 뒤집어진 세상, 그 안에서도 권력은 인간을 타락시켰고 똑같은 부정과 부패만 되풀이 될 뿐이었습니다. 이때 야야가 에비게일이 동행한 산책에서 이 섬이 거대한 리조트였음이 밝혀지자 다시 최하급 노동자로 돌아가기 싫었던 에비게일이 야야를 공격하려는 모습을 끝으로 영화는 마무리됩니다. 

 

 

영화 슬픔의 삼각형은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을 넘어서 권력에 대한 인간의 본성, 즉 탐욕으로 인한 폐해를 그려냅니다. 감독은 사회에 만연한 불공정과 불평등이 민주주의와 공산주의, 자본주의와 능력주의와 같은 시스템 문제가 아니라 인간과 권력, 한정된 자본이 조합된 사회가 결코 깨끗할 수 없다는 다소 냉소적인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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