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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회에 끝까지 맞선 영웅들의 뒷이야기 정승화 장태완 정병주 김오랑

freemaden 2023. 11. 30. 23:35

영화 서울의 봄을 감상하시면 악에 가담하는 자들과 악을 방치하는 자들, 그리고 끝까지 악에 저항하는 자들이 등장합니다. 이번 포스팅은 전두환이 주축이 되어 하나회의 군사반란 12.12 군사 쿠데타가 일어날 당시 어려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불의에 굴복하지 않고 끝까지 싸워 나라를 지키는 군인의 본분을 다한 영웅들의 뒷이야기를 전하고자 합니다. 

 

 

1. 장태완 ( 수도경비 사령관 )

 

장태완 수도경비 사령관은 어떻게든 반란군을 진압하려고 끝까지 싸운 영웅이지만 12.12 군사쿠데타로 반란군의 승리가 확실시되자 12월 13일 보안사로 끌려가 45일간 조사를 받게 됩니다. 1980년 조사에서 풀려나 강제예편되는 불명예를 겪었고 장태완의 부는 아들이 반란군에 패배해 끌려갔다는 소식을 들은 뒤로 식사를 끊고 술로 과음을 하시다 건강이 악화되어 돌아가시게 됩니다. 또 1982년에는 서울대학교 자연대학 수석 입학한 그의 하나뿐인 외아들 장성호가 아버지에게 다녀오겠습니다라는 짧은 말을 남기며 여행을 떠났지만 이후로 아들의 소식이 끊겨버려 장태완은 지인과 함께 아들을 찾아다닙니다. 그리고 아들이 집을 나간 뒤 한 달째 되던 날 장태완의 아들은 낙동강가 산기슭에서 시신으로 발견되었고 아직도 장태완의 아들이 사망한 이유에 대해서는 밝혀내지 못한 상태입니다. 

 

 

전두환이 대통령이 되고 신군부가 대한민국을 장악한 시기, 전두환 정부는 장태완에게 한국증권전산 사장에 임명하고 장태완은 이를 거절하지 않고 받아들입니다. 이후 회장자리에까지 오르게 되지만 김영삼 정부가 들어서고 장태완은 정승화 등과 함께 노태우, 전두환을 비롯한 신군부가 행했던 악행들을 법정에서 고발하고 이에 관련된 책까지 출판하며 전두환과 노태우의 신군부를 비판하는 데 힘을 쏟게 됩니다. 이후 장태완은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되어 정치활동을 이어오다 정계은퇴를 선언하고 민주당 고문직을 맡습니다. 이후 2010년 그는 78세의 나이에 숙환으로 별세하며 다사다난했던 생을 마무리합니다. 현재 장태완 대장의 시신은 현충원에 안장되어 있습니다. 

 

 

2. 정승화 ( 육군참모총장, 계엄사령관 )

 

박정희 대통령 사후 계엄사령관에 임명된 정승화는 전두환과 하나회 조직의 힘이 점점 커지는 걸 경계해 그를 한직으로 보내려 하지만 국방부장관의 반대에 부딪혀 무산되었고 이것이 전두환의 귀에 들어가 12.12 군사반란이 일어나게 됩니다. 전두환은 정승화를 납치해 보안사령부 서빙고분실에 감금했고 수도를 지키는 장태완, 정병주, 김진기와 같은 지휘관들을 모두 제압한 뒤 강압적으로 대통령의 재가를 받아 정승화에게 갖은 고문 수사를 행하게 됩니다. 1980년 재판에서 정승화는 내란방조혐의 10년형을 선고받고 6개월간 형을 살다 형집행정지 명령으로 석방됩니다. 1981년 3월 전두환이 대통령에 취임한 이후 정승화는 특사로 사면받게 되지만 전두환과 노태우의 신군부 세력이 행한 악행들을 결코 잊지 않습니다. 1993년 정승화는 전두환, 노태우를 군사반란 죄로 고발하고 법정에서 장태완과 함께 적극적으로 증언해 어둠의 역사를 대중들에게 확실히 알렸습니다. 2002년 정승화는 숙환으로 세상을 떠나 현재는 국립묘지에 안장되어 있습니다.

 

 

3. 정병주 ( 공수특전사령관 )

 

12.12 군사반란 당시 공수특전사령관 직을 지내고 있던 정병주였지만 그의 소속 부대인 1공수, 3공수, 5공수 여단장이 모두 반란군에 가담해 그의 지휘권은 무력해집니다. 또 공수특전사령본부는 직속병력이 없었기에 자신을 배반하고 침공해 오는 공수부대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지만 김오랑 소령과 함께 끝까지 항전하다 김오랑 소령은 사망하고 정병주 사령관은 체포되어 끌려갑니다. 이후 그는 1989년 강제 예편되어 군생활을 하다 1989년 송추 인근 야산에 목을 매달아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됩니다. 그의 직접적인 사망 원인은 현재까지도 자살 이외에 밝혀진 바가 없습니다. 현재 고인의 시신은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되어 있습니다.

 

 

4. 김오랑 소령

 

김오랑 소령은 정병주 공수특전사령관 곁을 끝까지 지키며 반란군에 항전했던 유일한 장교였습니다. 그는 반란군의 6발의 총상을 입고 사망했는데 그의 나이 겨우 35세였습니다. 이 충격으로 김오랑 소령의 부인 백영옥 씨는 실명했고 아들의 죽음을 전해 들은 그의 어머니는 2년 뒤 아들의 곁으로 떠나게 됩니다. 이후 부인 백명옥 씨가 남편이 행한 의로운 마지막을 세상에 알리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결국 김오랑 소령은 중령으로 추서 됩니다. 하지만 1991년 부인 백명옥 씨는 의문의 실족사로 사망하면서 아직까지도 사인에 대해 미스터리로 남아있습니다. 2014년 특전사령부는 김오랑 중령을 보국훈장을 수여해 끝까지 군인의 본분을 다한 마지막 행적을 잊지 않습니다. 

 

 

위 영웅들의 순고한 희생정신과 활약상은 영화 서울의 봄에서 생생하게 시청하실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 역사에서 가장 긴 어둠이 시작되었을 무렵 악의 무리들에게 대한민국이 점령당한 그 날, 누군가는 악에 동조하며 자신의 배를 채웠고 누군가는 이를 방조했으며 누군가는 군인으로서 끝까지 나라를 지키기 위해 싸웠습니다. 불리한 상황에서 자신의 본분을 끝까지 지킨 그분들의 의로운 용기와 행동에 감사드리며 또 그분들의 희생에도 불구하고 악에 굴복한 그날의 대한민국을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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